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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3성 독립운동 관련 답사
동북 3성(흑룡강성, 길림성, 요령성) 여정.
하얼빈에 도착하여 처음 간 곳은 정율성 기념관이었다. 중국에서조차 중국 영웅 100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다.
조린 공원으로 이동했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집행을 앞두고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하기 직전에 거닐었던 공원이 조린 공원이다. 이곳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비를 보며 숙연해졌다.
731부대 옛터를 방문했다. 생체실험을 비롯한 일본의 만행이 담긴 기록물이 이렇게 많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략에 대한 사과 없는 일본의 태도가 후안무치하다고 느껴졌다.
우리나라에도 일제가 만행을 저지른 곳이 많다. 서대문 형무소 등 일본 만행 역사 유적지에 갈 때 국화꽃 한 송이라도 들고 가리라 다짐해 본다.
하얼빈역에 있는 안중근 기념관, 신흥무관학교 옛터(추가가, 합니하, 고산자가), 양세봉 선생의 흉상을 보면서 근현대사의 독립운동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초, 중, 고, 대학생에게 독립운동의 밀도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방편 중의 하나가 역사 탐방, 독립유적지 탐방 등의 현장학습 혹은 수학여행이라고 본다.
안중근 의사의 동상 앞에서 인사를 올리고 신흥무관학교(신흥중학교) 옛터를 돌아보고, 양세봉 선생의 흉상 주위의 잡초를 뽑으며 역사의식을 다졌다.
하얼빈역에서 민족의 원흉 이토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한 안중근은 경술년 양력 3월 26일 오전 10시에 형장에 서서 "나는 대한 독립을 위해 죽고, 동양 평화를 위해 죽는데 어찌 죽음이 한스럽겠소?"라고 하였다. 나이 31세였다.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이다.
양세봉은 서울특별시의 국립현충원과 평양시의 애국열사릉에 모두 묘가 조성되어 있는 등 사실상 남북이 모두 인정한 '독립운동가'이자 '영웅'으로 추앙받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신흥무관학교는 1910년부터 1920년까지 존재했던 독립운동가 양성학교로 신민회(新民會) 조직과, 이동녕(李東寧), 이회영(李會榮), 장유순(張裕淳), 이상룡(李相龍), 이석영(李石榮), 지청천(池靑天), 이범석(李範奭), 이세영, 양규열(梁圭烈), 윤기섭(尹琦燮), 이장녕, 박두희(朴斗熙), 성준용, 백종렬(白鍾烈), 오상세(吳祥世), 원병상(元秉常) 김창환(金昌煥), 남상복(南相復), 이장녕(李章寧), 이세영(李世永), 변영태(卞榮泰), 성준용(成駿用), 김련(金鍊), 윤기섭, 여준(呂準) 등의 인물을 알아야 한다. 홍범도(洪範圖)의 부대와 연합하고, 김좌진부대와 대한독립군단 결성하였고 학교 졸업생들이 서로군정서와 북로군정서에서 활동하였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만주 지역의 대한통의부, 정의부, 신민부, 국민부 등 주요 독립운동단체에서 활동하였다. 중국 본토 지역에서 활동했던 단체로서 주목되는 조직으로는 의열단과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을 들 수 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학교가 폐교된 이후에도 만주와 중국 본토의 여러 독립운동단체에서 각각 활발히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렇게 독립운동에 많은 사람을 배출한 교육기관인 신흥무관학교의 터를 안내자에 의해 돌아보면서 안내판 하나 없는 옥수수밭으로 남아 있음이 안타까웠다.
광복회는 신흥무관학교 터 뿐만 아니라 안내판 없는 독립운동 유적지에 안내판을 세우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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