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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건국’ 뉴라이트는 ‘적대적 두 개의 국가’ 찬동하는 것
“‘이승만 건국’뉴라이트는
‘적대적 두 개의 국가’찬동하는 것”
이종찬 회장, 백범 김구 77주기 추모서 밝혀
▲ 백범 김구 선생 77주기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는 이종찬 광복회장
“만약 뉴라이트들이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대통령’이라 높이 세우려 한다면, 요새 김정은이 말하는 ‘적대적 두 국가론’을 뉴라이트들이 먼저 이야기한 셈이 됩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오늘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77주기 백범 김구 선생 추모식 추모사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이날 이 회장은 추모사 도중 “쓰라린 마음으로 (백범 선생께) 몇 마디 더 고유하겠다”면서 지금까지 헌법개정이 되면서 헌법전문 구절이 어떻게 개정되었는지 살펴보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 회장은 “제헌헌법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한 국민은 기미년 3.1 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설하여, 세계 만방에…’ 구절이 3공 헌법과 유신헌법, 5공 헌법을 개정하면서 전문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을 건설했다’는 말이 빠지고,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만 남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공화제를 실시한, 독립운동의 주체인 임시정부를 헌법에서 빼버린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 회장은 그러면서 “그래서 87년 민주화 헌법 개정 시 독립운동 선배들이 저에게 이제야말로 역사를 바로잡자고 하시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다시, 분명하게 명시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말하자면 3.1 독립선언의 결과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우리 헌법에서 지우려는 것은 군사정권의 일관된 역사인식이고, 민주화를 갈망하는 국민들은 모두 임시정부를 역사에서 그 가치를 재정립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그러면서 “이런 음모는 계속되고 있다. 내가 광복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첫 번째 나를 비난하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광복회관 앞에 걸렸다. 국민도 없고, 국토도 없고, 주권도 없는 임시정부를 정부라고 강변하는 ‘망나니, 이종찬’이라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런 요건들이 일제에 의해 침탈당하여 빼앗겼으니깐 이를 찾기 위해 임시정부이지, 당신들이 말하는 정부의 요건을 다 갖추었다면 왜 ‘임시’라 했겠는가라 반문했다. 그분들의 진의는 독립투쟁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그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비로소 건국했다고 해서 ‘이승만건국대통령’이란 말을 고집하고 호칭하고 있는데, 사실 이 대통령 자신도 자기가 건국했단 말 하지 않으셨다.”면서 “북한도 김일성을 북한의 사회주의 조국 시조라 하고 높이 세웠다.”면서 “만약 뉴라이트들이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대통령’이라 높이 세우려 한다면, 요새 김정은이 말하는 ‘적대적 두 국가론’을 뉴라이트들이 먼저 이야기한 셈이 된다.”고 갈파했다. (끝)
붙임자료 | 백범 김구 선생 77주기 추모식 추모사 전문 |
올해는 김구 선생께서 탄생하신 지 150주년 되는 해이고 유네스코는 선생의 높은 문화, 교육을 향한 집념을 높이 평가하여 세계인에게 알리고자 2026년을 ‘김구의 해’로 지정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선생께서 불의의 흉탄으로 비탄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신 지 77주년 되는 날입니다.
영원한 우리의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님!
후학 이종찬 여전히 허탈한 마음으로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1945년 10월, 중국 상해 강만(江灣)비행장에서 였습니다. 당시 10세 소년 이종찬은 어린 눈으로 봐도 세상이 변했음을 알고 놀랐었습니다. 엄청 많은 한국교민들 환영인파로 넓은 상해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루어 꽉 찼습니다.
저분들이 모두 중국 땅에 거주하는 한국교포들이란 말이야? 저도 의아하여 마음속으로 계산해 봤습니다. 내 눈엔 수 백 만 명은 될 것 같은 사람들.
어디서 태극기를 마련했는지, 모두 들고 있다니 저는 놀라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때 중절모를 쓰고 미군 비행기의 불편한 간이 층계로 천천히 내리신 검은 양복의 선생님! 아! 지금도 그날의 감격스런 그 장면, 영원히 잊지 못하겠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우리 가족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그 여덟 글자 가운데 ‘임시’자만 빠지면 대한민국정부가 되고, 그 정부가 우리나라를 금시발복(今時發福) 시켜줄 것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저는 그 희망을 가슴에 비밀처럼 감췄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
선생께서 귀국하신 지 불과 3년 남짓, 선생께서는 ‘임시’자가 빠진 대한민국정부의 군복을 입은 국군 장교가 쏜 45구경 총에 불귀의 몸이 되셨습니다.
상해에서 봤던 그 많은 환영인파는 다 어디로 간 것입니까? ‘임시’란 두 글자만 빠지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나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 순간, 저는 역사가 나를 배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새로운 불신이 저를 엄습했습니다,
저만 배신을 느낀 게 아닙니다. 저의 어머님, 경교장 빈소에 다녀오신 저의 어머님! 슬픔 속에 우시면서 독백처럼 말씀했습니다.
“선생께서 왜놈 장교 손에 총 맞아 돌아가셨다면 원통하지 않겠다. 어떻게 대한민국 국군 장교 손에 총 맞아 돌아가신단 말이냐?”
저는 어머니의 이 독백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 순간 어머니께서도 배신당하여 억울해서 우시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님께서도 결혼해서 즉시 중국으로 망명했던 30년의 인생이 허망함을 느끼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
이게 저희들이 살아 온 해방 후 역사, 현대사였습니다. 그런데 배반당한 역사는 오래전 끝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백범은 테러리스트”로 죽어 마땅한 것처럼 버젓이 역사책에 끼워 넣으려는 음모가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외칩니다. 백범 선생님이 테러리스트라고? 그러면 안중근 의사도 테러리스트이고, 윤봉길 의사도 테러리스트가 되네요. 우리나라 최고 훈장은 영웅들의 몫이 아니라 모두 테러리스트들이 차지한 꼴이 되었습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그리고 1차대전을 통해 막대한 인명을 살상한 일본제국주의는 욱일승천하는 기세로 다른 나라를 계속 침범해 왔습니다.
세계인이 1차대전을 반성하여 평화를 지키기 위해 창립한 국제연맹을 오만한 일본은 계속할 침략전쟁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탈퇴했습니다.
침략에 광분한 그런 일본을 상대하는 우리의 독립군... 그 초라한 장비로,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무엇이 남았겠습니까? 폭탄을 안고 자기 몸 던져 나라를 찾겠다는 외에 선택지가 있었나요? 이제와서 대한민국, 조금 밥 먹고 살게 되었다고 그분들을 테러리스트로 역사에서 몰아낸다고요? 역사는 이제 그분들이 함부로 쓰는 시대가 되었습니까?
존경하는 선생님 !
쓰라린 마음으로 몇 마디 더 고유하겠습니다. 우리 헌법은 그간 크게 다섯 차례 개정되었습니다. 헌법전문이 어떻게 개정되었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제헌헌법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한 국민은 기미년 3.1 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설하여, 세계 만방에…” 여기서 ‘대한민국’이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말합니다.
헌법전문의 원형은 그렇게 명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3공 헌법, 유신헌법, 5공 헌법으로 개정하면서 전문에서 “대한민국을 건설했다”는 말이 빠졌습니다.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만 남았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공화제를 실시한, 독립운동의 주체인 임시정부를 헌법에서 빼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87년 민주화 헌법 개정 시 독립운동 선배들이 저에게 이제야말로 역사를 바로잡자고 하시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다시, 분명하게 명시했습니다.
말하자면 3.1 독립선언의 결과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우리 헌법에서 지우려는 것은 군사정권의 일관된 역사인식이고, 민주화를 갈망하는 국민들은 모두 임시정부를 역사에서 그 가치를 재정립한 것입니다.
이런 음모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광복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첫 번째 저를 비난하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광복회관 앞에 걸렸습니다. 국민도 없고, 국토도 없고, 주권도 없는 임시정부를 정부라고 강변하는 ‘망나니, 이종찬’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그런 요건들이 일제에 의해 침탈당하여 빼앗겼으니깐 이를 찾기 위해 임시정부이지, 당신들이 말하는 정부의 요건을 다 갖추었다면
왜 ‘임시’라 했겠는가? 반문했습니다. 그분들의 진의는 독립투쟁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분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비로소 건국했다고 해서 ‘이승만건국대통령’이란 말을 고집하고 호칭하고 있어요. 사실 이승만 대통령 자신도 자기가 건국했단 말 안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김일성을 북한의 사회주의 조국 시조라 하고 높이 세웠습니다. 만약 뉴라이트들이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대통령’이라 높이 세우려 한다면 요새 김정은이 말하는 「적대적 두 국가론」을 뉴라이트들이 먼저 이야기한 셈이 됩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께서 정치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을 각오하면서도 조국이 분단된다고 단정 수립을 반대하셨고, 실패할 가능성이 충분한데도 남북협상에 임한 것은 한반도의 영구 분단을 끝까지 막고자 노력한 것이라 역사를 아는 국민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끝까지 남북한 공히 단정 수립하지 말고 통일정부 수립의 길로 가자고 하여 남북의 분열주의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정치적 몰락했고, 끝내 생명까지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일관된 「하나의 조국」 그 외침은 오늘에 사는 우리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그 외침이 남북의 7천만 우리 민족의 희망이며 함께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선생님, 올해는 선생님께서 탄생하신 지 150주년 되는 해입니다. 선생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나의 소원」이 세계인의 공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유엔 산하기구인 유네스코에서 드디어 금년을 ‘김구의 해’로 지정했습니다. 선생님께서 평소에 말씀하신 바, “나는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그리하여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실현되기를 원한다” 하셨습니다. 이런 선생님의 문화국가를 지향하는 정신이 유네스코 정신과 일치한 가치이고 세계인의 자산으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정신을 ‘백범 김구 정신’이라 세계인에게 소개하고, 널리 공감대를 형성하여 올해를 계기로 세계인에게 일치된 마음을 갖는 것이 ‘김구의 해’의 참된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세계인의 희망에 부응하여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것임을 선생님께 고유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일시적으론 불리하고 뒤처진다 해도 영원히 사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김구의 해’는 영원히 사는 출발점입니다. 이런 선생님의 가르침을 우리 후학들도 영원히 따를 것임을 삼가 고유합니다.
선생님이시어!
부디 우리를 지켜봐 주시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대한민국 108년 6월 26일
광복회장 이종찬 추모의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