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 병오의병 120주년 기념 학술회의 연다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6.06.23

근대 '민족군사'의 기원·

국군의 뿌리, 병오의병을 기억하라!

광복회, 병오의병 120주년 기념 학술회의 연다

 

 

올해는 '()'로 일어난 전북 병오의병 창의 12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근대 민족군사의 기원이자 국군 정통성의 뿌리인 한말 의병전쟁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최익현과 임병찬 의병장을 중심으로 하는 병오의병은 을사늑약에 항거해 전북 무성서원에서 창의한 대규모 의병 봉기로 의병전쟁을 호남지방 전역으로 확대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를 기념하는 학술회의가 광복회 주최로 열린다.

 

광복회(회장 이종찬)는 오는 26() 오후 1시부터 국회박물관 2층 체험관에서 병오의병 120주년 그 기억과 기념을 주제로 하는 학술회의를 광복회학술원과 국회의원 이정헌, 광복회전북특별자치도지부 공동 주관, 국가보훈부 후원으로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학술회의는 개회식과 기조 강연, 주제 발표와 종합 토론 순으로 진행된다. 기조 강연은 김상기 충남대 명예교수가 전북 병오창의의 역사적 위상과 현창사업’, 1주제 발표는 김건우 전주대 교수가 ‘1906년 병오창의 의병의 구성과 인적 네트워크’, 2주제 발표는 김항기 독립기념관 연구위원이 ‘1906년 태인의병 지도부의 항일노선과 전개-최익현과 임병찬을 중심으로 ’, 3주제는 정소영 원광대 강사가 의병전쟁에 대한 타자의 시선 영국 언론보도와 전북의병’, 4주제 발표는 전북의병 사적지의 공간 활용 기억과 기념 연대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표한다.

 

 

 

주제 발표가 끝난 뒤 홍영기 순천대 명예교수(한국학호남진흥원장)가 좌장을 맡아 심철기(한남대 교육연구소 교수), 이양희(충남대 강사), 권의석(순천향대 교수), 김주용(원광대 교수) 등 주제별 약정 토론자와 함께 열띤 토론을 벌인다. ()

 

 

 

 

 

붙임자료 1

병오의병 창의 120주년 기념 학술회의 포스터

 

 

 

 

 

 

 

 

붙임자료 2

발표 예정 주요 논문의 내용

 

 

1. 기조 강연 : ‘전북 병오창의의 역사적 위상과 현창사업

(김상기 충남대 명예교수)

 

이 글에서 김상기 교수는 1906년 병오년 태인 무성서원에서 창의한 대규모 의병봉기를 계기로 전북, 전남지역에서 의병이 잇달아 일어나 의병전쟁이 호남지방 전역으로 확대 전파된 사실을 소개하였다. 예컨대 중기 의병전쟁 시기 남원, 임실, 고창, 익산, 순창, 완주, 장수 등 전북 일대로 전파되었고, 나아가 후기 의병전쟁 시기 광양, 장성, 창평 등 전남 일대로 확대되어 태인 무성서원에서 봉기한 병오의병 창의가 호남지역 의병전쟁의 기폭제로 작용한 사실을 가장 큰 역사적 의의로 보았다. 전북의병이 지닌 역사적 의의가 적지 않고, 전국에서 의병으로 포상된 인원이 경북에 이어 전국 2위 규모인 사실을 적시하였다. 그럼에도 비석, 사당, 기념관, 동상, 전투지, 생가, 조형물, 기타 의병 관련 현충시설은 경북, 전남 등 다른 지역에 비해 소략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전북의병기념관설립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2. 1주제 발표 : ‘1906년 병오창의 의병의 구성과 인적 네트워크

(김건우 전주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이 글에서 김건우 교수는 병오의병 창의의 준비와 전개과정, 의병의 규모와 조직, 그리고 인적 네트워크를 규명하였다. 특히 병오 창의군의 진군 루트와 장소, 그리고 일자 등을 상세하게 규명한 점이 주목된다. 곧 태인 무성서원에서 봉기한 뒤, 태인향교->정읍관아->내장사->구암사->순창관아->곡성관아를 거쳐 순창으로 회군하였다가 전주남원 진위대와 대치 중 동족끼리 서로 박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의진을 해산한 사실을 밝힌 것이다.

 

3. 2주제 발표 : ‘1906년 태인의병 지도부의 항일 노선과 전개

최익현·임병찬을 중심으로

(김항기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

 

이 글에서 김항기 연구위원은 전북 병오의병 창의 부대인 태인의병 지도부의 실천방략, 의병부대 해산 이후의 대응과 귀결 문제를 고찰하였다. 최익현 주도 의병으로 파악하던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 태인의병의 조직 기반과 참여 세력, 이후 호남의병에 미친 영향을 실증적으로 추적하였다.

결론은 태인의병이 을사늑약 이후 호남 유림의 위기의식 속에서 형성된 항일운동으로 최익현 개인의 의병이라기보다 호남지역 유림과 향촌사회가 결합하여 조직한 의병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임병찬·고석진·최제학 등 호남 유림들이 먼저 창의를 모색하면서 이들이 전국적인 상징성을 가진 최익현을 의병장으로 추대함으로써 태인의병이 성립하였다고 보았다. 또한 의병의 구성원이 단지 유생층에 한정되지 않고, 포수와 향촌 사족, 일반 농민층까지 포함하고 있었음을 분석함으로써 태인의병의 사회적 기반을 구체적으로 규명한 점이 특징이다.

 

4. 3주제 발표 : ‘의병전쟁에 대한 타자의 시선 영국 언론보도와 전북의병

(정소영 원광대 강사)

 

이 글은 매우 다른 접근법으로 의병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 특히 영국 언론보도의 의병 인식을 고찰한 특별한 연구이다. 정소영 원광대 강사는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지 중 하나인 더 타임즈(The Times)의 의병 관련 보도를 중심으로 당시 영국의 공론장에서 의병들의 항전을 어떻게 이해하였는지, 나아가 이 같은 인식이 일본의 한국 지배에 대한 평가와 어떠한 방식으로 연결되는지를 고찰하였다.

결론은 1905~1906더 타임즈는 도쿄 특파원의 보고를 바탕으로 홍주의병 등 한국 내 저항을 단순한 약탈 행위나 한국 정부의 무능 탓으로 치부하며 의병 활동의 정치성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나아가 의병 활동을 민중의 자발적 봉기가 아닌 황실의 선동과 외신의 여론 조작 결과로 몰아감으로써 황실이 주도한 정치적 음모의 산물로 규정한 것이다.

또한 1907년 이후 의병 저항이 전국적으로 확대·장기화 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더 타임즈는 서울과 지방에서 이어진 민중 시위·군대 반란·의병 봉기를 여전히 고종과 황실 세력이 배후에 있는 음모의 산물로 설명하는 한편, 일본을 한국의 개혁과 질서 회복이라는 과업을 수행하는 주체로 묘사하였다.

특히 군대해산 이후 확산된 전국적인 의병 항쟁이 장기간의 진압 작전에도 불구하고 종식되지 않자, 국제 여론으로부터 일본군의 가혹한 진압 방식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일본의 통치 역량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에 더 타임즈는 논의의 초점을 다시 일본의 개혁문명화 과업에 두며 일본을 비호하지만, 의병 문제는 이미 일본 통치의 성패와 역량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 있었다. 그 결과 병탄이 가시화되던 시기의 더 타임즈는 일본의 한국 통치를 문명화 과업으로 규정하면서도, 군사적 강압에 의존한 통치가 계속될 경우 문명국들의 승인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하며, 유화적인 통치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하였다.